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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빅매직 - 엘리자베스 길버트

펀치킹 2021. 7. 20.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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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북북찢는 모임>을 위한 독서 중이다.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빅매직이라는 책을 읽고있다.

현재 전체 책의 18%정도 읽었는데

'안되면 되게 하라' '온 우주가 너를 위해'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책 '시크릿'의 후속작같은 느낌이 든다. 

여러번 반복해서 이야기하면서 설득력있게 주장하고, 약간 세뇌시키는 느낌의 어투로 이야기하는 점이 인상깊다.

간혹 내가 내 마음 속에 불안감을 어쩌지 못 해 안절부절하고 있다면 그 부분을 다시 읽고 싶다 느껴지기도 한다. 

 

아래는 내가 책을 읽으며 마음 속에 와닿았던 글들을 적어둔 것이다.

내 글을 통해 이 책을 접하지 않았던 분들도 <빅 매직>의 좋은 구절들을 통해 이 책을 한 번 만나보고자 하는 마음이 들 수 있길 바란다.  


>>두려움은 지루하다

---> 두려움은 지루하다, 여러번 반복해도 틀리지 않은 명언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하나 더 나아가자면, 내 입장에서는 '지루함도 두렵다.'

두려운 것은 지루하고, 지루한 것은 두렵고.

최악의 악순환 중 하나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 내가 쓰려던 그 소설은 더 이상 없었던 것이다.

(...) 물론 2년 전에 완성해 둔 조사 자료들과 원고들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한 때 따스한 맥박이 고동치던 실체였다가 이제 텅 빈 껍데기만 남은 상태라는 것을 그 즉시 깨달았다. 

(...) 그것이 기사회생하기를 희망하고 다시 작업이 가능하도록 몇 달 동안이나 이리저리 찔러 보았다. 하지만 소용 없었다.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허물을 벗어 놓은 뱀 가죽을 찌르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내가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그것은 더 빠르게 부서져 흙먼지로 되돌아갔다. (...) 착상은 기다리다 지쳐서 나를 떠나버린 것이다. (...) 나는 그러한 상황에서 품을 수 있는 가장 최선의 희망은 바로 오래된 착상을 보내 주고, 그 다음에 돌아오게 될 착상을 붙잡는 것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 앤과 글쓴이가 다른 시기에 유사한 줄거리의 책을 구상중이었다는 걸 서로 알게된 에피소드

>> 우리는 사실 우리가 처음 서로를 만난 바로 그날에, 착상이 공식적으로 나로부터 그녀에게로 옮겨 갔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 착상이 우리가 입 맞추던 순간에 교환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나의 친구 여러분, '빅 매직'이다. 

---> 글쓴이가 소설을 썼던 사람답게,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능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해당 에피소드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긴 하지만, 이것을 '영감'의 전이로 표현하는 것은 지극히 글쓴이의 주관적 해석이라고 본다. 앤과 그녀가 아닌 또다른 제3자도 이 내용을 똑같이 구상하고 있을지 모르나, 그것을 '영감'이 공유된다라고 표현하는데는 무리가 있다. 두사람이 회의를 해서 하나의 영감을 만든 게 아니라, 각자 다른 공간에서 다른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각자의 영감이 비슷했던 것 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지 너랑 내가 같은 걸 좋아하네? 쌍둥이처럼 참 닮아있어~ 정도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비슷한 꿈을 꾸고 인터넷에 자세한 꿈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해몽에 대해 찾아보는데, 나랑 비슷한 꿈을 꿨던 사람이 이미 있었던 것과 같이.  이런 부분에 있어서 이것이 과연 '미국인 특유의 과장법'이라고 해야할지 '글쓴이의 과한 리액션'이라고 해야할지.. 정확한 표현을 찾을 수는 없지만, 이런 에피소드들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이야기해줬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든다.

 

예를 들어 '우리는 그 착상이 우리가 입 맞추던 순간에 교환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나의 친구 여러분, '빅 매직'이다.'라는 글을 '그리고 바로 그것이 나의 친구 여러분, '빅 매직'의 모습일 것이다' 라는 식으로 한번 꼬아서 서술했다면, 빅 매직에 대해 거부감을 혹은 아직은 낯선 느낌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어법이 아니었을까. 

 

물론 '가능성을 열어두는 말씨'가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 뜬구름 잡는, 혹은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느낌의, 운이 좋았다는 느낌의, 보이지 않고, 여전히 추상적인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내가 생각하는 게 확실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현실주의자인 나에겐 거부감을 느끼도록 했다.  

 

 

>> 내가 내릴 가장 파괴적이고 최악인 결론은 앤 패칫이 내 착상을 훔쳐 갔다는 것이다.  (...) 하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이 같은 악이적인 결론을 내린다. (...) 그런 사고는 바로 결핍의 관념을 지나치게 신봉하는 데서 온다. 세상은 부족한 자원을 둘러싼 적자 생존의 전쟁터이며, 우리 주변을 맴도는 그 어떤 것이든 결코 충분한 양이 될 수 없다고 굳게 믿는다. (...) 내가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출간하고 난 수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며 내가 자기들의 책을 써냈다며 비난을 터뜨렸는지 모른다. (실제로 내가 일일이 셀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는 숫자다.)

---> 저거라면 나도 하겠다.. 그건가???

 

 

>> 그는 자신과 자신의 작업이 중요하고, 의미 있고, 진중하게 여겨지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작품이 다른 사람들의 작품보다 더 뛰어나기를 바랐으며, 자신이 복잡하고 강렬한 아우라를 풍기길 원했다. 예술적 고뇌와 고통이 뒤따랐으며, 폭음과 함께하던 이 시기는 그의 영혼의 어두운 밤들이었다. 그는 예술적 고난이라는 광신 속에서 그만 길을 잃었다. 하지만 그는 그 고난을 '헌신'이라 불러싿. 

 그러나 그의 아이들이 그토록 자유롭고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적인 창작을 해내는 것을 보고, 웨이츠는 계시의 순간을 맞이했다. 바로 예술 활동이라는 게 사실 그리 대단하고 엄숙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작곡가로서 내가 진짜로 유일하게 하는 일이란, 그냥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꾸며 주기 위한 보석 장신구를 만드는 일 정도란 걸 깨달은 겁니다"

 

 

>> 중심적 역설

결론적으로 예술은 절대적으로 무의미하다.

그러나 또한 심오한 의미로 가득 차 있기도 하다. 물론 이말은 역설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은 이미 성인일 테니, 그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거라고 생각한다. 

 

+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은 이미 성인일테니 그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과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뿐만 아니라 지금 <빅 매직>도 글쓴이 자신을 위해 쓰는 글일 뿐이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부분은 마치 책을 읽는다기 보다는 이 사람과 이야기하는 듯한 개성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 창조적인 예술을 한다는 것은 중요하고 엄청난 일이다. 동시에 그렇게까지 대단한 일도 아니다. 이역설을 수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당신의 머릿속에 충분히 빈 공간을 마련해 두라.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넓고 여유 있는 공간으로. 그렇게 하고도 더 많은 공간을 비워 둬라. 당신에겐 앞으로 그 공간이 필요할 것이다. 

 

 

>> 나는 과업을 이루기 위해 나 자신에게 시간 제한을 하지도 않았다. 예를 들어 "서른이 될 때까지 내 글을 출간하지 못한다면 이 꿈은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아 보겠다." 같은 것 말이다. 사실 나는 내 길에 그 어떤 조건이나 제한도 걸지 않았다. 내 꿈에는 마감일이 아예 없었다. 

 

 

>> 당신의 손을 작업에서 떼지말고 언제나 손에 쥐고 있으라는 것. 정말 아무런 집필의 영감도 떠오르지 않는 운 나쁜 날에는 주방 타이머를 30분 단위로 맞춰두고 그 시간 동안 식탁에 앉아서 뭔가를, 뭐라도 끄적이려 애썼다. 

 

+ 이분은 글을 쓰고, 본인의 작업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을 마치 다이어트처럼 표현하는 듯 하다. 

하루 다이어트에 돌입하면 그 다음부터는 하기 싫다는 감정과 함께 할 수 없을 거라는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와 작은 나의 희망을 무너뜨린다. 하고 싶다, 해야만 한다는 2일째 가장 세력이 약해지며 하기 싫다와 할 수 없다에 또다시 자리를 내어주고 만다. 3일째는 더더욱 세력은 약해지고 10일정도가 되면 거의 다이어트를 시작하지 않았을 때로 돌아간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고 싶다, 해야만 한다에는 큰 명분이 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10년이고 20년이고 심하게는 죽을 때까지 이 짓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글 쓰는 것도 만약 내게 다이어트 만큼의 명분이 있다면 그만두지 않았을까? 글을 쓰는 것 보다 급한 게 너무 많았다. 단 한번도 내가 글쓰는 것을 1번으로 둔 적은 없었던 거 같다. 작가가 되는 것이 오히려 1번이었던 거 같다. 처음으로 내 글쓰기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 이러한 본능에 대해 노벨 문학상 수상 시인인 쎼이머스 히니가 특히 우아하게 논평한 구절이 있다. 그는 시가 즉각적으로 근사하게 잘 쓰이기를 기대하면 안 된다고 했다. 이제 막 시를 쓰려는 시인은 계속해서 우물 알래로 물동이를 길어 내리고 있는데 우물 길이의 반 정도만 내렸다가 다시 끌어올리기 때문에 매번 물은 채우지 못하고 그냥 빈 공기만 길어올리는 셈이다. 절망괌과 좌절감이 엄청나겠지만, 어째든 그 작업을 계속 해 나가야만 한다. 

 그렇게 수년간의 연습을 거치고 나면, 히니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러다 물동이에 매달아 놓은 사슬이 예기치 않게 짧게 당겨져 팽팽해지는 때가 온다. 그때 당신은 자기가 던지던 물동이와 함께 우물 안으로 빠져 들어가 몸을 흠뻑 적시며, 이후 사슬의 반동 때문에 계속해서 당신을 물 밑으로 잡아 끌게 될 수면과 격렬히 맞부딪치게 된다. 당신은 결국 우물 쪽이 아닌 당신 자신의 잔잔한 표면을 깨뜨리게 되는 것이다"

 

+ 다행인 것은 우물 안으로 들어갈 때 사용할 사슬이 무한대라는 점, 내가 그 우물에 사슬을 내릴 수 있는 시간이 꽤 많이 남았다는 점 일듯. 

 

 

>> 인간 조건의 진리에 대한 심오한 고찰을 토대로 맨슨이 쓴 것에 따르면, "모든 일은 가끔씩 아주 지긋지긋하다" 그러니 당신은 자신이 어떤 종류의 지긋지긋함을 기꺼이 감당할 각오가 되어 있는지 결정해야 한다. 따라서 올바른 질문은 "당신은 무엇에 열정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당신은 그 일에 따르는 가장 불쾌한 축면까지도 꿋꿋이 견뎌 낼 수 있을 만큼 차고 넘치는 열정을 가졌는가?"다. 

(...)

만일 당신이 정말로 온 세계를 구경하고 싶다면, 낯선 열차 안에서 소매치기를 당할 위험까지도 감수할 것이다.

 

+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지금 현재 다루고 있는 고약한 샌드위치들. 

그것들이 나를 아무리 힘들게 한들. 샌드위치 일뿐. 먹지 않아도 되는 그냥 고약한 계속 냄새가 나는 샌드위치 일뿐. 

현재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두 사람이 있는데, 앞으로 그녀들을 고약한과 샌드위치라고 불러야지. 그래, 그래 좋아, 그래야겠다. 

 

 

>> 나는 항상 이것이 당신의 창작에 가하는 굉장히 잔인한 행위라고 느꼇다. 창조성이 무슨 정부 공무원이나 신탁 자금이라도 된다는 듯 창작 활동에 안정적이고 정기적인 급료를 요구하거나 기대하는 것 말이다. 자, 만약 당신이 오직 창조적 영감에 기대어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건 정말 환상적일 것이다. 모든 사람이 꿈꾸는 그런 삶이 아닌가? 하지만 그 아름다운 꿈이 현실의 악몽이 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된다. 재정적으로 자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요구는, 창조적 영감이 본래 지닌 예민하기 짝이 없는 섬세함과 변덕스러움에 너무 많은 압박을 줄 수 있다.

 

 

>> 하지만 부탁건대, 당신이 들인 창조적 노력에 대한 금적적인 보상이 반드시 따를 거란 기대는 하지 마라. (...)당신은 언제나 삼시 세끼 당신의 입에 음식을 넣어 주는 생업 한편에 당신의 창작 활동을 함께 곁들일 수 있다. 세 권의 책을 내리 쓰는 동안 나 역시 그렇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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